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람이다. 이슈는 잠시 머물지만, 사람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국제뉴스 제주본부는 오래 남는 사람들을 기록하려 한다. 이슈보다 더 깊고, 숫자보다 더 따뜻한 사람의 향기를 전하고자 한다.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작은 불빛을 따라가는 이들 속에서 문서현기자의 '이슈보다 사람'은 진심의 기록을 남기려 한다.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편집자 주]
![12일 오후, 제주시 한경면에 자리한 갤러리 카페 ‘묵담’을 찾았다. 1월 말까지 열리고 있는 ‘갤러리 속 작은 전시회’ 현장에서 김주식 화백을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삶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사진=문서현 기자]](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12/3455551_3595838_1756.jpg)
(제주=국제뉴스) 문서현 기자 ="정말 해도 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좋은 직업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힘들어도 견딜 수 있거든요."
30년 넘게 하늘을 날던 파일럿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땅 위에 앉아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제주의 풍경을 그린다. 바로 한국화를 그리는 서전 김주식 화백이다.
그는 공군에서 파일럿으로 근무하다가 대한항공과 제주항공 기장으로 수천 미터 상공을 누볐다. 하지만 이제는 제주시 한경면의 작은 갤러리 묵담에서 조금 낮은 시선으로 자연을 마주하고 있다.
12일 오후, 제주시 한경면에 자리한 갤러리 카페 '묵담'을 찾았다. 1월 말까지 열리고 있는 '갤러리 속 작은 전시회' 현장에서 김주식 화백을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삶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갤러리 카페 '묵담'은 이름처럼 고즈넉하고 평온한 공간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그림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잠시 아무 생각 없이 머무를 수 있는 '멍을 때리는 자리'도 마련돼 있어 이색적이었다. 조용히 앉아 창밖의 풍경과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다 보면, 시간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김주식 화백은 하늘을 날던 파일럿의 긴장감보다는, 먹을 갈며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의 차분함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주식 화백은 공군 파일럿으로 10년, 대한항공 국제선 기장으로 28년, 이후 제주항공에서 5년간 비행하며 30년 넘게 하늘에서 살았다. 정밀한 판단과 집중이 생명인 조종사의 세계에서 그는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을 견뎌왔다.[사진=김주식 화백]](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12/3455551_3595839_1832.jpg)
김주식 화백은 공군 파일럿으로 10년, 대한항공 국제선 기장으로 28년, 이후 제주항공에서 5년간 비행하며 30년 넘게 하늘에서 살았다. 정밀한 판단과 집중이 생명인 조종사의 세계에서 그는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을 견뎌왔다.
그가 파일럿을 꿈꾸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수를 준비하며 하숙을 했던 집이 우연히 비행장 인근이었다. 전투기가 이착륙할 때마다 울려 퍼지는 굉음은 일상이었고, 자연스럽게 조종사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됐다.
김 화백은 "그때 '나도 저렇게 멋진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말 죽을 만큼 공부해서 파일럿이 됐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12일 오후, 제주시 한경면에 자리한 갤러리 카페 ‘묵담’을 찾았다. 1월 말까지 열리고 있는 ‘갤러리 속 작은 전시회’ 현장에서 김주식 화백을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삶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사진=문서현 기자]](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12/3455551_3595840_1923.jpg)
하지만 그림은 그의 삶에서 한 번도 멀어진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비행을 시작한 뒤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해외 비행을 마치고 호텔에 머무는 시간마다 풍경 사진을 찍고 스케치북을 펼쳤다. 퇴직 이후의 삶을 막연히 기다리기보다, 이미 오래전부터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해온 셈이다.
김 화백은 "전문직으로 30년을 살았으니 퇴직 후에도 최소 20~25년은 또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건 결국 좋아서, 질리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수묵화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묵향에 대해 "솔잎과 흙 냄새가 섞인 듯한 향이 정신을 맑게 한다"며 "붓을 들기 전 먹을 가는 시간부터 이미 치유가 시작된다"고 했다.
![김주식 화백의 강릉 단경골1[사진=김주식 화백]](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12/3455551_3595841_205.jpg)
![김주식 화백의 불영계곡1 [사진=김주식 화백]](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12/3455551_3595842_2052.jpg)
조종사의 시선은 그림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 화백은 풍경을 볼 때도 항상 '조금 낮은 각도'를 유지한다. 그는 "수평에서 내려다보면 입체가 사라진다"며 "15도 정도 시선을 낮춰야 풍경이 가장 아름답게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생도 마찬가지다. 시선을 조금만 낮추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김 화백은 제주시 한경면 금등대안3길 42-10에 위치한 갤러리 카페 '묵담'을 운영하며 제주의 자연을 수묵화로 담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주식 화백이 바라본 제주의 자연은 한마디로 '심플함'이다. 김 화백은 "육지는 구도가 다양하지만, 제주는 그렇지 않다"며 "돌담과 제주 나무, 바람과 공기가 풍경의 전부"라고 말했다.
![김주식 화백이 그린 제주 풍경. 효돈천 상류 3절 [사진=김주식 화백]](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12/3455551_3595843_2128.jpg)
특히 김 화백의 시선을 오래 붙잡은 것은 제주의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공생'의 방식이다. 바람이 거센 제주에서는 공기가 나무 사이로 깊숙이 스며들고, 높은 습도 속에서 넝쿨이 나무를 휘감고 자라지만, 나무는 쉽게 죽지 않는다. 서로를 억누르기보다 함께 숨 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는 "제주에서는 넝쿨이 나무를 감아도 공생을 통해 함께 살아간다"며 "하지만 육지에서는 넝쿨이 나무를 감으면 결국 나무가 죽는다"고 설명했다. 자연의 방식에서 그는 삶의 태도를 읽는다. 김 화백에게 제주의 풍경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교과서다.
이런 이유로 그는 제주의 자연을 그릴 때 과장하지 않는다. 복잡한 구도 대신 여백을 남기고, 강한 대비 대신 조화를 택한다. 공생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김주식 화백이 그린 제주 풍경. 쇠소깍 상류 3절 [사진=김주식 화백]](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12/3455551_3595846_2414.jpg)
그래서인지 김 화백의 바람은 분명하다. "그림을 보고 마음이 잠시라도 쉬어갔으면 좋겠다." 그는 예술을 '멘탈 치료'에 비유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듯, 마음이 다쳤을 때는 음악과 그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가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림이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그림"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주식 화백의 그림은 시끄럽지 않다. 물은 흐르지만 요란하지 않고, 바위는 크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먹의 농담으로 쌓아 올린 바위와 나무 사이에는 언제나 숨 쉴 틈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수차례 붓 자욱은 김 화백의 인생에서 인내의 시간과도 닮았다.
김주식 화백이 실경산수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의 로망과 결이 같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는 "자연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옮겨왔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주식 화백이 그린 제주 풍경 .카페묵담 주변 3절[사진=김주식 화백]](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12/3455551_3595847_2435.jpg)
그래서 김 화백은 관념산수가 아닌 실경산수를 고집한다. 풍경을 미화하거나 상상으로 재구성하는 대신, 눈앞에 있는 자연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는 방식이다.
그는 "그림이 실제 풍경과 최대한 닮아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작품을 본 사람이 언젠가 그 장소에 갔을 때 '바로 여기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김 화백이 생각하는 그림의 역할이다. 단순히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먼저 길을 열고 사람이 그 풍경을 찾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관람객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아직 가보지 못한 제주의 숨은 곳곳을 만나고, 마음속에 그 풍경을 품게 되기를 바란다. 김 화백에게 실경산수는 재현을 넘어, 자연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다리다.
김 화백의 그림을 만나면 우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오래 보고싶어진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김주식 화백의 창녕 우포늪 봄[사진=김주식 화백]](https://www.gukjenews.com/news/photo/202512/3455551_3595848_2541.jpg)
특히 김 화백이 그려낸 제주의 수묵화는 화려하지 않다. 돌담과 나무, 바람과 물 제주의 자연처럼 담백하다. 그래서 오래 남는다. 제주의 자연처럼 담백하고, 그래서 오래남는다. 김화백이 말한 여백은 삶의 여유라는 말이 그림 앞에서 설명이 아니라 체감으로 다가온다.
김 화백은 자신의 바람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주에 잘 정착해서 이곳 풍경을 계속 그리고 싶습니다. 잘 유지될 정도의 수익만 나와도 충분해요."
그의 말에는 성취보다 지속을, 성공보다 버텨내는 삶을 택한 태도가 담겨 있었다.
김주식 화백에게 성공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그릴 수 있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김주식 화백(서전)프로필
전 공군 파일럿
전 대한항공·제주항공 기장
제주소재 갤러리 카페 '묵담' 대표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대한민국 미술대전 제27회 입선(2008, '고향어구')
대한민국 미술대전 제37회 특선(2018, '암곡')
한국 명인대전 우수상
행주·한국화 특장전 특선
겸재·소치 미술대전 입선
개인전 12회
한국화 구상회전, 율목회전 등 한국화 단체전 다수
현 한국미술협회 소속
현 한국화 구상회 회원
현 율목회 회장
ATC 4기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민영뉴스통신사 국제뉴스/startto2417@daum.net


